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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민족의 전통의상

북미 나바호족의 전통 의상

북미 나바호족의 전통 의상, 땅과 신앙의 상징에서 시작되다

북미 나바호족의 전통 의상은 단순한 복식의 개념을 넘어, 이들의 뿌리 깊은 신앙, 자연관, 공동체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상징적 유산이다. 미국 남서부 지역, 특히 애리조나와 뉴멕시코, 유타 지역에 정착한 나바호족은 유목민적 기원을 가진 아메리카 원주민 중 하나로, 역사적으로 스페인 식민자와의 접촉 이후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문화 체계를 형성해 왔다. 특히 의복은 단순한 옷을 넘어 ‘삶의 철학’을 표현하는 수단이자, 종교적 세계관과 밀접히 연결된 의례적 수단이기도 했다. 나바호족은 땅, 하늘, 동물, 식물 등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중시하며 살아왔고, 이들의 전통 의상은 그러한 자연적 요소를 기호와 색상, 형태로 구체화한 하나의 ‘이동식 신앙체계’였다. 예컨대 옷의 색은 방향성과 계절, 신령과의 연결을 의미하며, 특정한 날에는 특정 색의 복장을 착용함으로써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나바호족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손으로 짠 양모 치마와 블라우스를 입었다. 치마는 여러 겹으로 풍성하게 겹쳐 입었고, 블라우스는 은 단추와 진주 모양의 장식이 박힌 긴소매 형태였다. 흙색, 검정색, 짙은 파란색, 진녹색 등 어두운 색감이 주를 이루며, 이는 사막과 하늘, 식물 등 자신들이 살아온 환경과 밀접하게 연결된 색상들이다. 초기에는 주로 양모를 자급자족 방식으로 가공해 사용했고, 이후 스페인 무역상과 접촉하면서 사틴(satin)이나 벨벳 같은 유럽 원단도 전통 의상에 통합되었다. 특히 벨벳 블라우스는 나바호족의 ‘혼합 전통’을 대표하는 요소 중 하나다. 이는 식민과 교역이라는 외부 세계의 영향을 자신들의 전통 안으로 흡수하고, 그것을 재해석해 독자적인 미학으로 승화시킨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의복의 형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기호와 상징이다. 나바호족의 문양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세상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풀어낸 하나의 ‘언어’다. 치마와 블라우스에 새겨진 기하학적 문양은 대지와 바람, 비와 불을 상징하며, 자수나 프린팅 방식이 아닌 손수 직조된 형태로 구현된다. 여성들은 이러한 문양의 의미를 구전으로 전수받으며, 세대를 거치며 복식 안에 신앙적 지혜를 담아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중요한 의례에는 상징적인 색상을 선택하여 착용하는데, 빨강은 힘과 생명력을, 파랑은 정화와 평화를, 하양은 순수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이러한 색상의 선택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일정한 규범과 믿음 체계를 따르는 것이며, 나바호 사회 안에서는 그 자체로 의례의 일부로 간주된다.

나바호족 남성들의 복식 또한 고유하다. 전통적으로 남성은 무릎까지 오는 면바지와 셔츠, 그리고 은버클이 달린 가죽 벨트를 착용했다. 머리에는 붉은색이나 흰색의 머리띠를 두르고, 중요한 행사에서는 깃털 장식이 달린 모자를 쓰기도 했다. 남성 의복의 실용성과 상징성은 여성 의복보다 덜 강조되는 편이지만, 전통 사냥이나 춤의식에서는 그들만의 상징을 표현하는 복장이 존재했다. 특히 춤의식에서는 신령과 조상에 대한 존경을 담은 장식 요소를 첨가하여, 무속적 신앙과 공동체의 일체감을 표현하였다. 또한 남성과 여성 모두 가죽 moccasins(모카신)을 신었는데, 이는 대지를 걷는 행위를 신성시하는 나바호족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이처럼 북미 나바호족의 전통 의상은 단순한 문화의 흔적이 아닌, 신앙과 환경, 공동체의 기억이 엮인 다층적인 ‘의복 서사’로 구성되어 있다. 각 소재와 색상, 형태는 그들 삶의 조건과 태도, 그리고 우주의 질서에 대한 철학을 담고 있으며, 이는 현대 의복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복식관을 형성한다. 특히 자급자족을 기반으로 한 직조 기술과 자연친화적 소재의 선택은 오늘날의 환경 위기 시대에도 지속가능성과 자립적 삶의 가능성을 상기시킨다. 나바호족의 복식은 단순히 보존되어야 할 ‘전통’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삶의 방식으로서도 재조명될 수 있는 가치를 담고 있다.

 

북미 나바호족의 전통 의상

북미 나바호족의 전통 의상, 은과 터콰이즈로 새긴 정체성의 지도

북미 나바호족의 전통 의상에서 가장 독보적인 특징 중 하나는 ‘은(Silver)’과 ‘터콰이즈(Turquoise)’를 중심으로 한 장신구 문화다. 나바호족은 은세공과 터콰이즈 세공에 있어 세계적으로 가장 정교한 기술을 보유한 민족 중 하나로 꼽히며, 이는 단순한 장신구 제작 기술을 넘어 공동체의 문화적 정체성과 역사적 경험이 농축된 복식 예술로 평가받는다. 은과 터콰이즈는 각각 하늘과 대지를 상징하며, 이 조합은 나바호 신화와 우주론에서 매우 신성한 조화로 여겨진다. 나바호족에게 터콰이즈는 바람, 물, 구름, 그리고 생명의 흐름을 나타내며, 은은 빛, 조상, 그리고 정화를 상징한다. 따라서 이러한 장신구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닌, 하나의 ‘보호 부적’이자 ‘신과의 연결 매개체’로 여겨져 왔다.

은 장신구는 목걸이, 벨트, 브로치, 이어링, 반지, 팔찌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며, 대부분의 경우 상징적 문양이 새겨져 있다. 예를 들어, 화살표는 삶의 방향성, 새의 발자국은 영적 인도를, 나선형은 무한한 순환과 조상의 존재를 의미한다. 이러한 문양은 단지 예술적 감각으로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생애주기와 깊은 연관이 있는 기호 체계로 작동한다. 나바호족 여성들은 결혼, 출산, 성년식 등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마다 의미 있는 장신구를 제작하거나 선물 받으며, 이는 ‘시간이 새겨진 복식’으로 기능하게 된다. 이처럼 은 장신구는 나바호 사회에서 가족의 역사와 기억, 그리고 신앙의 궤적을 담는 하나의 시각적 언어로 발전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스쿼시 블로섬 목걸이(Squash Blossom Necklace)’다. 이는 나바호족 전통 의복의 가장 대표적인 장신구로, 은과 터콰이즈가 조화를 이루는 대형 목걸이다. 가운데 매달린 ‘나자(Naja)’라는 반달 모양의 펜던트는 고대 모로코 문화에서 기원했으며, 이후 스페인을 통해 나바호족 문화에 도입되어 재해석되었다. 나자 펜던트는 악한 기운을 막고, 여성의 출산을 보호하며, 신령의 가호를 기원하는 상징적 장식이다. 이처럼 외래 요소를 받아들이되, 이를 공동체의 세계관에 맞게 전유하고 재해석하는 태도는 나바호족 복식 전반에 흐르는 문화적 탄력성과 자율성의 핵심이다.

나바호족은 은세공뿐만 아니라 가죽공예와 직조술에서도 고유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나바호 여성들은 수직 직기를 사용하여 양모로 ‘치디(chidi)’라 불리는 전통담요와 숄을 짜왔으며, 이 직물은 단순한 보온용이 아니라 각 문양마다 신화적 상징이 담긴 예술 작품이었다. ‘스톰 패턴(Storm Pattern)’, ‘크로스(십자)’, ‘트윈 피크(Twin Peak)’와 같은 문양은 대지와 신령, 공동체의 이중성, 자연 현상의 조화를 나타내는 기호로, 옷 자체가 ‘움직이는 이야기책’ 역할을 하기도 했다. 특히 여성의 의복에 새겨진 문양은 ‘보는 이’가 그 사람의 가족 배경, 종교적 지향, 삶의 이정표를 유추할 수 있을 만큼 의미의 밀도가 높다.

또한 전통 복식의 각 구성 요소는 개인의 정체성과 공동체의 일체감을 동시에 표현한다. 예를 들어 은 벨트의 크기나 장식 수는 착용자의 나이와 사회적 역할, 가족의 경제력 등을 상징하고, 장례식에서는 고인의 중요한 장신구를 함께 매장하거나 후손에게 물려주는 문화가 전해진다. 이는 장신구가 단지 생전에만 존재하는 물질이 아니라, 죽은 뒤에도 조상과 후손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물로 작동함을 보여준다. 나바호족의 전통 의상은 이처럼 일상생활, 신앙, 공동체 구조, 사후 세계까지 아우르는 총체적인 문화 장치다.

한편, 현대에 들어서면서 나바호 장신구는 예술성과 희소성을 인정받아 전 세계 수집가들 사이에서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나바호족 공동체 내부에서는 이들이 ‘상품’이 아니라 ‘문화적 생명체’로 간주되기에, 무분별한 상업화를 경계하며 공동체 차원에서 관리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실제로 일부 나바호 장인들은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되, 구매자에게 그 의미를 정확히 알리고 전통의 맥락 속에서 보존되기를 바라는 메시지를 함께 전달한다. 이는 단순히 ‘전통을 보호하자’는 논의가 아니라, 문화적 주체성의 회복과 미래 세대에의 전승이라는 점에서 깊은 함의를 가진다.

결국 북미 나바호족의 전통 의상에서 은과 터콰이즈는 장신구를 넘어, 삶과 죽음, 시간과 기억, 땅과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복합적 상징 언어로 기능한다. 이러한 장신구는 나바호 공동체의 미학이자 철학이며,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문화적 DNA로 후손들에게 계승되고 있다.

 

북미 나바호족의 전통 의상, 현대 문화 속 정체성과 저항의 상징으로

북미 나바호족의 전통 의상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강력한 문화적 존재감을 드러내며, 새로운 방식으로 계승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전통 복장의 재현을 넘어, 나바호족이 직면한 식민주의적 역사와 문화적 침탈에 대한 정체성 회복의 수단이자 저항의 언어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실제로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 연방 정부의 인디언 동화 정책에 따라 많은 나바호 아이들이 전통복 착용을 금지당하고, 공립학교에서는 영어 사용과 기독교 예배만 강요되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나바호 문화 요소들이 사라졌지만, 복식만큼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공동체의 뿌리를 되살리는 중심 도구로 부상했다. 오늘날 나바호 청년층은 전통 복식을 페스티벌, 퍼레이드, 졸업식, 결혼식 등 다양한 공식 행사에서 당당히 착용함으로써, 문화적 자부심을 표현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선언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나바호족 공동체 내부뿐 아니라 글로벌 패션 산업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2000년대 들어 대형 패션 브랜드들이 ‘에스닉 감성’이나 ‘보헤미안 무드’를 표방하며 나바호 스타일의 프린트, 문양, 실루엣을 무단 차용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대표적으로 2011년 어반 아웃피터스(Urban Outfitters)는 ‘Navajo’라는 명칭을 제품명에 사용하며 나바호 스타일의 액세서리와 속옷을 대량 생산·판매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에 대해 나바호 네이션은 지적재산권 침해 및 문화유산 훼손을 이유로 정식 소송을 제기했고, 이는 원주민 전통문화의 상업적 착취 문제를 전 세계적으로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나바호족의 전통 의상이 단지 아름다운 민속품이 아닌, 법적 보호가 필요한 ‘문화 자산’임을 명확히 인식시키는 전환점이 되었다.

동시에 나바호족 내부에서도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자체적인 디자인 혁신과 브랜딩 전략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젊은 나바호 디자이너들은 전통 문양과 은장신구, 직물 기법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컬렉션을 선보이며, 전통과 현대, 공동체와 시장 사이의 균형을 모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베스니 옐레톤(Bethany Yellowtail)과 같은 원주민 여성 디자이너들은 전통복식의 의미와 기술을 계승하면서도, 여성의 몸과 정체성을 존중하는 윤리적 패션을 지향하며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옷을 디자인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복식을 통해 역사와 여성, 환경, 공동체 복원의 이야기를 직조해내는 ‘이야기꾼’ 역할을 한다. 이로써 나바호족의 전통 의상은 오늘날 패션의 언어를 빌려 더 넓은 사회적 발언권을 확보해 가는 중이다.

더불어 디지털 공간에서도 나바호 복식의 의미는 확장되고 있다.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 등의 플랫폼에서는 나바호 청년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전통 춤을 추거나, 복식 제작 과정을 공유하는 콘텐츠가 점점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단순한 콘텐츠 소비를 넘어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새로운 무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또한 이러한 활동은 외부인이 원주민 문화를 단편적이고 낭만화된 시선으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 주체적인 재현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특히 ‘#IndigenousFashion’이나 ‘#NavajoStyle’ 해시태그를 통해 연결된 디지털 커뮤니티는 지리적 거리를 넘어 나바호 디아스포라와 비원주민 지지자들 간의 새로운 문화적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

정치적인 의미도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미국 원주민 사회에서는 전통 복식이 시위와 정치 캠페인에서 상징적 수단으로 사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예를 들어 다코타 접근 파이프라인(DAPL)에 반대하는 ‘스탠딩 록 시위’에서는 많은 원주민 활동가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등장해, 자신들의 존재와 권리를 시각적으로 선언했다. 이는 단지 전통의 복원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저항이자 문화적 자립의 선언이었다. 나바호 전통복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며, 의복이 곧 정체성, 곧 발언, 곧 생존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요컨대 북미 나바호족의 전통 의상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민속품이 아니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언어이며 방패이자 기념비다. 이는 단순한 복식의 의미를 넘어, 정치적 표현, 경제적 주체화, 문화적 회복을 동시에 수행하는 다층적 도구로 진화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나바호족의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을 세계무대에서 더욱 강렬하게 드러내는 수단으로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