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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전통의상

칠레 마푸체족의 천연 염색 의상: 서구화 위기를 넘어선 정체성의 재발견

마푸체족의 정체성과 의복 문화의 시작: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피어난 예술

칠레 남부의 안데스 산맥 기슭과 드넓은 파타고니아 평야 일대에 수천 년 동안 뿌리내리고 살아온 마푸체족은 '대지의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지닌 민족입니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아우카니아(Araucanía) 지역에서 격렬한 저항을 통해 독립적인 민족 정체성을 굳건히 지켜온 그들은 남미 대륙 원주민 중에서도 특히 강인한 생명력과 고유한 문화를 보존해 온 대표적인 집단으로 손꼽힙니다. 그들은 고유 언어인 마푸둥운(Mapudungun)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자급자족의 농경과 목축, 그리고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공존하는 삶의 방식 속에서 풍요롭고 독창적인 의복 문화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마푸체 여성들이 손수 만들어 입은 전통 의상은 단순히 몸을 보호하는 기능을 넘어선 중요한 문화적 매개체였습니다. 이 의복은 공동체 내에서의 사회적 지위, 결혼 여부, 연령, 심지어 개인의 성격과 삶의 철학까지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자, 마푸체족의 집단적 기억과 세계관이 담긴 살아있는 문화 유산이었습니다. 마푸체족의 전통 복장은 주로 천연 섬유로 짠 직물에 직접 염색한 자연색의 색감과 기하학적 문양이 특징적입니다. 라마, 알파카, 양 등 가축의 울(양모)과 식물성 섬유인 리넨 등을 활용해 손으로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짠 직물은, 기계로 대량 생산된 현대 직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밀도와 질감, 그리고 시간과 노동의 가치를 담고 있었습니다. 마푸체 사회에서는 직조된 직물 한 조각이 비단보다 더 값지고 귀하게 여겨졌으며, 그 위에 새겨진 염색 문양은 일종의 시각적 언어처럼 해석되곤 했습니다.

특히 각 가문마다 고유의 문양이 존재했고, 마푸체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나 할머니로부터 이러한 문양의 의미와 직조 기법을 익히고 전수받으며 대를 이어갔습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 전수를 넘어, 가문의 역사와 정체성을 기억하고 보존하는 교육적, 문화적 행위였습니다. 의복의 문양들은 자연 현상, 우주관, 동식물, 조상의 지혜 등을 형상화한 것으로, 착용자의 세계관을 드러내고 동시에 외부 세계와 소통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이 의복은 단순히 일상생활의 도구를 넘어, 마푸체인들의 영혼을 정화하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례나 공동체의 중요한 축제에서 신성한 힘을 발휘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즉, 마푸체 복식은 그들의 삶의 모든 영역, 심지어 영적인 영역까지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풍부한 상징성과 깊은 문화적 의미를 지닌 마푸체족의 복장은 20세기 중반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 그리고 칠레 정부의 강압적인 근대화 정책의 흐름 속에서 점차 주변부로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 주도의 개발과 근대화는 마푸체족의 전통적인 농경 방식과 공동체 중심의 삶을 와해시켰고, 도시 중심의 교육 시스템은 젊은 세대에게 '현대적'인 가치, 즉 서구 문명을 모방한 물질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삶을 강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푸체의 전통 복식은 '옛날 것', '발전하지 못한 원시적'인 이미지로 치부되면서 점차 외면받고 수치스러움의 대상이 되기까지 하였습니다. 젊은 세대는 도시에서의 취업과 성공을 위해 서구식 의상을 선호하게 되었고, 전통 의상은 자연스럽게 멀어졌습니다. 결국, 마푸체족의 강인한 민족 정체성과 함께 그들의 오랜 의복 문화도 잊히고 소멸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전통 의복의 소멸은 단순한 양식의 변화를 넘어, 마푸체족의 삶의 방식 전체가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에는 마푸체 여성의 삶 속에서 직조와 천연 염색이 곡물 재배나 가축 사육만큼이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된 중요한 노동이자 예술 활동이었습니다. 여성들은 자연으로부터 재료를 얻고, 오랜 시간을 들여 한 조각의 천을 만들어내며, 그 과정 속에서 자연과의 교감과 공동체적 유대를 형성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저렴하고 편리한 옷이 일상복으로 자리 잡으면서, 마푸체의 전통 의복은 일부 민속 축제나 관광객을 위한 공연, 혹은 박물관의 유리창 안에서만 볼 수 있는 '과거의 유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한 민족의 문화적 다양성을 잃는 것이자, 특히 여성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온 중요한 생활문화이자 기술, 그리고 지혜의 단절이라는 점에서 더욱 안타까운 현실이며, 현대 사회가 놓치고 있는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천연 염색의 전통 기술과 그 상징적 의미: 대자연의 색으로 물들인 지혜

 

마푸체족의 천연 염색 기법은 단순하게 옷감에 색을 입히는 행위를 넘어, 자연과의 깊은 교감을 바탕으로 수천 년간 축적된 정교한 지식과 지혜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들은 인공적인 합성 염료가 존재하기 훨씬 이전부터 자연 속에 깃든 다양한 색채를 이해하고 이를 의복에 담아낼 줄 알았습니다. 마푸체 여성들은 특정 계절에 피는 꽃잎, 식물의 뿌리, 나무껍질, 열매 심지어 곤충에서까지 염료를 추출했습니다. 예를 들어, 루메(Luma) 나무껍질에서 붉은 갈색을, 코이우에(Coihue) 나무에서 검은색을, 바퀴벌레의 일종인 코치닐(Cochineal)에서는 선명한 붉은색을 얻는 등 자연의 다채로운 팔레트를 활용했습니다.

각각의 색상에는 마푸체족의 세계관과 신념이 담긴 깊은 의미가 부여되었습니다.

붉은색 (Kolüll): 피와 생명, 열정을 상징하며, 조상들의 용기와 대지를 보호하는 신성한 힘을 나타냈습니다. 또한 중요한 의례에서 보호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파란색 (Kallfü): 하늘과 물, 영적인 정화를 상징하며, 평화와 조화, 그리고 지혜를 의미했습니다. 깊은 파란색은 지식과 영적인 통찰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검은색 (Kurü): 어둠과 밤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신성한 보호, 권위, 그리고 뿌리의 깊이를 나타내는 색이었습니다. 특히 영적인 지도자나 주술사의 의상에 많이 사용되어 악한 기운으로부터 보호하고 내면의 힘을 강화하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흰색 (Ligue): 순수함과 깨끗함,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며, 밝은 미래와 정신적인 고양을 의미했습니다.
이렇게 상징성이 짙은 색채의 조합은 단순한 미적 표현을 넘어, 공동체의 의례와 정체성을 나타내는 도구로 기능했으며, 착용자의 영혼과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의미까지 내포했습니다.
전통 염색 과정은 긴 시간과 지극한 정성을 필요로 했습니다. 염료를 얻기 위해 식물 재료를 채취하여 건조하고, 이를 잘게 부수거나 삶아 염료를 추출한 뒤, 복잡한 전처리 과정을 거친 옷감을 수 시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염료에 담갔다 빼는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어떤 색을 내기 위해서는 여러 번의 염색과정을 거쳐야 했으며, 염료의 농도와 담그는 시간에 따라 색감의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염색 공정은 마푸체 여성들의 탁월한 인내심과 예술가적인 장인정신을 요구했으며, 각 염색 기법은 대대로 세대 간 구술로 전해져 내려오는 귀한 지식이었습니다. 특히 마푸체 사회에서는 가족의 여성들이 함께 모여 염색과 직조 작업을 하는 문화가 있었는데, 이는 단순한 노동을 넘어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고, 젊은 세대에게 기술과 지혜를 전수하는 중요한 교육의 장으로 작용했습니다. 의복 하나하나에 담긴 손길과 시간은 곧 가족의 역사이자,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소중한 유산 그 자체였습니다.

염색뿐 아니라 직조 방식에서도 마푸체만의 고유한 정신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마푸체족은 주로 '트랄칸(Trarikan)'이라고 불리는 전통 수직 베틀을 활용하여 직물을 짰습니다. 이 베틀은 단순한 구조이지만, 마푸체 여성들은 이를 통해 직선적이고 기하학적인 문양을 반복적으로 짜내는 방식으로 깊은 정신성을 품은 직물을 만들어냈습니다. 각 무늬는 마푸체 신화와 자연환경에서 유래했으며, 때로는 밤하늘의 천상의 별자리, 농경 주기, 혹은 주변 동식물의 생태를 형상화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문양은 복잡하지만 조화롭고, 단순하지만 깊은 의미를 담고 있어 마푸체 여성들은 그들의 세계관, 철학, 그리고 꿈을 옷감 위에 표현했습니다. 이처럼 만들어진 복식은 문자를 사용하지 않던 마푸체 사회에서 문화를 기록하고 전승하는 문자보다 강력한 문화의 기록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칠레 내에서의 급속한 도시화와 문화적 동화 압력은 이러한 마푸체 전통 복식의 명맥을 끊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화학 산업의 발달로 인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저렴하고 편리한 합성 염료와 의류가 마푸체 마을에 유입되면서, 오랜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전통적인 천연 염색과 직조 기술은 실용성과 경제성 측면에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소비 트렌드 속에서 전통 기술은 설 자리를 잃었고, 이와 함께 젊은 세대의 교육 및 취업을 위한 도시 이주가 늘어나면서, 전통 기술을 온전히 전수받고 계승할 마푸체 여성 장인의 수는 급감했습니다. 지금은 당시의 기술을 완벽히 재현할 수 있는 장인이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현재 마푸체의 전통 의복은 더 이상 일상복으로 입혀지지 않으며, 일부 민속 축제나 관광 상품으로만 모습을 드러내는 상황입니다. 이는 단순히 '옷 한 벌의 사라짐'이 아니라, 마푸체족의 민족 정체성과 여성의 역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연결해주던 정신적인 고리의 해체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복식의 소멸은 한 민족의 문화적 다양성의 손실일 뿐만 아니라, 자연과 공존하며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보여주었던 고유한 통찰을 잃는 일이며, 현대 문명이 직면한 환경 문제와 과소비 문제에 대한 답을 전통에서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서구화에 따른 전통 복식의 위기와 변화: 잊혀진 가치를 되찾으려는 몸부림

 

20세기 중반 이후 칠레 정부는 '국가 통합'과 '경제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마푸체족을 비롯한 원주민을 칠레 사회의 주류 문화에 강제로 편입시키려는 일련의 문화 동화 정책을 강도 높게 시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푸체족은 전통적인 공동체 생활 방식을 포기하고 농지 수탈, 강제 이주, 스페인어 공교육 의무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중앙 문화에 편입되기를 강요받았습니다. 자연스럽게 마푸체 전통 복식도 일상생활에서 점차 자리를 잃어갔습니다. 특히 학교에서 교복 착용을 의무화하거나, 공공장소에서 '단정하고 문명화된 복장'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마푸체 고유의 의복은 '다름'이 아닌 '미개함'이나 '이질감'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전통 복장을 입은 마푸체인들은 차별적인 시선과 편견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TV와 영화 등 미디어를 통한 서구 패션과 문화의 대량 유입은 젊은 세대의 인식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옷은 더 이상 단순히 몸을 가리는 기능적 도구를 넘어,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개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마푸체족의 전통 복장은 점차 '촌스러운 것', '시대에 뒤떨어진 것', '시골 사람의 옷'으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교육이나 취업을 위해 도시로 진출한 마푸체 청년들 사이에서는 전통복이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기까지 하였으며, 심지어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스스로 전통복을 멀리하는 현상까지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전통 복식의 전승은 맥이 끊어지기 시작했고, 다음 세대에 물려줄 지식과 기술이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그러나 암흑기 속에서도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원주민 권리 보호와 문화 다양성 보존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높아지면서, 칠레 내에서도 마푸체 전통문화 복원 움직임이 자생적으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다시 일기 시작했습니다.

예술가들의 선구적 역할: 일부 마푸체 예술가들은 서구화된 미학만을 좇기보다는 자신들의 뿌리에서 영감을 얻어 전통 문양과 천연 염색 기법을 현대적인 디자인에 접목시킨 의상을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 사이의 접점을 찾으려는 움직임으로, 도시에서 살아가는 마푸체 2세, 3세들에게도 자신의 민족 문화에 대한 새로운 자부심과 인식을 심어주려 노력했습니다. 때로는 유명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을 통해 '마푸체 스타일'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패션이 생성되기도 했으며, 이는 전통 복식이 현대 패션의 영역에서도 충분히 경쟁력 있고 매력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디지털을 통한 확산: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플랫폼의 발달은 전통 문화를 알리고 교류하는 새로운 창구를 열었습니다. 마푸체 전통 의상을 활용한 패션쇼 영상이나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등이 온라인에 공유되면서, 전 세계인들이 마푸체 문화의 아름다움과 깊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마푸체인들 스스로에게도 자신들의 문화가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자긍심을 부여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은 많습니다. 천연 염색과 직조 기술을 온전히 구현해 낼 수 있는 고령 여성 장인들의 수는 줄어들고 있으며, 이들의 귀한 기술과 살아있는 기억이 사라지는 속도는 매우 빠릅니다. 단순히 의복의 외형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담긴 깊은 의미와 철학, 그리고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전통적인 제작 과정까지 보존하려면 마푸체 공동체 차원의 더욱 적극적인 노력과 함께 칠레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복식을 지켜내는 일은 단순히 옷을 보존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 민족의 정체성, 역사, 언어, 그리고 영혼을 지켜내는 일이기에 더욱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입니다.


마푸체 복식의 생존 전략: 교육과 공동체 복원을 통한 문화의 지속 가능성

 

마푸체 복식의 지속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핵심 전략 중 하나는 바로 **'교육'**입니다. 단순히 학교 교실에서의 지식 전달을 넘어, 전통 의복 제작에 대한 이론과 실습을 동시에 가르치는 통합적인 프로그램은 마푸체족의 다음 세대에게 단순한 기술 전수를 넘어선 민족 정체성과 문화적 자긍심을 함께 길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칠레 남부 아우카니아 지역의 몇몇 공립학교에서는 지역 공동체 및 마푸체 문화 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마푸체 전통복 수업을 정규 교과과정에 편성하기도 했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직접 식물에서 염료를 추출하고, 손 베틀로 직물을 짜는 경험을 통해 조상의 지혜와 문화를 직접 체득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뿌리를 인식하고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기를 수 있도록 돕는 소중한 기회가 됩니다. 이는 '백문이 불여일견'이 아닌 '백견이 불여일행'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닙니다.

또한 마푸체 복식 보존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전략은 **여성 공동체 중심의 '협동조합'**의 활성화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마푸체 복식의 기술 전수와 제작은 여성들의 몫이었으며, 그들의 손길에서 마푸체 문화의 정수가 만들어졌습니다. 지역의 여성 장인들이 모여 천연 염색 재료를 직접 재배하고 수확하며, 손으로 직조한 고품질의 원단과 완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방식은 마푸체 전통 복식의 명맥을 잇는 동시에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굳건한 기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협동조합은 단순히 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넘어, 장인들 간의 기술 교류와 지혜 전수, 그리고 젊은 세대에 대한 멘토링 역할을 수행하며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는 중요한 문화적 구심점 역할을 합니다. 이들의 노력은 공정 무역과 윤리적 소비, 지속 가능한 생산이라는 현대 사회의 중요한 가치에도 부합하며, 외부 세계와의 건강한 접점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마푸체 복식은 유럽이나 미국의 공정무역숍에서 높은 가치로 판매되며, 그 문화적 가치가 전 세계적으로 재조명되기도 합니다. 이는 마푸체 문화가 단순히 '구호 대상'이 아닌, 독자적인 가치를 지닌 '문화 상품'으로서 인정받는 긍정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활용 역시 마푸체 전통 복식의 보존과 확산에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마을 단위의 폐쇄적인 환경에서 구술 전승에 의존했던 기술들이, 이제는 영상 콘텐츠, 온라인 튜토리얼, 개인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마푸체 직조 장인이 직접 염료를 만들고 실을 짜는 과정을 담은 유튜브 영상은 수십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전 세계인들에게 마푸체 문화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는 마푸체 공동체가 자신들의 문화를 보호하는 동시에, 더 넓은 무대로 진출하는 중요한 창구가 되며, 그 결과 마푸체 의복은 더 이상 '시골의 유물'이나 '박물관 전시품'이 아니라 세계적인 민속문화이자 예술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세대는 이러한 디지털 매체를 통해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노력이 오로지 외부의 관심과 판매, 그리고 디지털 확산에만 집중된다면, 진정한 문화 복원의 의미는 퇴색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복식을 복원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단지 보기 좋게 전시하거나 경제적인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마푸체 공동체 안에서 '살아있는 문화'로 기능하고, 구성원들의 일상과 정체성에 깊이 뿌리내려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따라서 마푸체 전통 복식을 보존하고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외부의 지원과 긍정적인 관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내부 구성원들의 문화적 자각과 적극적인 실천, 그리고 세대 간의 끊임없는 소통이 중요합니다. 복식은 그 민족의 혼과 정신을 담는 그릇이기에, 이 그릇이 단단히 유지되기 위해서는 내부의 힘이 필요합니다.

 

 

칠레 마푸체족의 천연 염색 의복
칠레 마푸체족의 천연 염색 의복


잊혀진 실을 다시 잇기 위한 영원한 노력과 문화의 가치

 

마푸체족의 천연 염색 의복은 단순한 옷 한 벌을 넘어섭니다. 이는 칠레 안데스 산맥의 웅장함과 파타고니아 평야의 드넓음 속에서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온 마푸체족의 삶, 여성들의 끈기 있는 노동과 예술성, 공동체의 끈끈한 유대와 연대, 그리고 오랜 시간 억압받아 왔지만 결코 꺾이지 않았던 민족적 정체성의 상징이자 살아있는 기록입니다. 그러나 20세기 서구화와 중앙집중적 문화정책, 경제적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이러한 귀한 복식은 주변부로 밀려나고, 그 진정한 가치를 알고 이를 보존하려는 이들조차 줄어들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이제 이 마푸체 전통 복식이 소멸의 위기를 넘어 다시 생명력을 얻고 활짝 피어나기 위해서는 단순히 겉모습을 '복원'하는 것을 넘어선 문화적 재구성과 내면화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는 박물관에 갇힌 유물을 단순히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신과 지혜를 현재의 삶 속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창조적인 작업입니다. 복식을 되살리는 일은 물론 많은 시간과 인력, 그리고 재정적 자원이 드는 힘든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의상의 문제를 넘어, 한 민족의 역사와 기억, 감정, 그리고 그들의 세계관을 되살리는 거대한 문화적 복원 과정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는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또한 마푸체족의 전통 의복에서 발견되는 자연과의 교감,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 공동체 중심의 생산과 소비, 그리고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태도는 오늘날 물질주의와 환경 파괴, 개인주의 심화로 인해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소중한 가치들을 되새겨볼 수 있는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마푸체의 복식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하는 '미래 지향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칠레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과 학계 및 민간의 지속적인 관심, 교육 현장에서의 실질적인 변화, 그리고 무엇보다 마푸체 내부 구성원들의 문화적 자각과 주체적인 실천이 함께 조화를 이룰 때, 이 귀한 전통 복식은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를 호흡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강력한 문화적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전통은 과거를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지혜를 얻어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과정입니다. 마푸체 여성들이 짜는 실처럼, 그들의 문화를 다시 잇는 작업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필요하며, 영원히 지속되어야만 합니다. 그들이 다시 짠 실이 하나의 천이 되고, 그 천이 한 민족의 혼이 담긴 옷이 되어 당당히 세계를 걸어가는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