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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전통의상

한국의 조선 후기 사대부 여성 ‘장옷’

장옷은 조선 후기 사대부 여성들이 외출 시 착용하던 격식 있는 복식으로, 유교적 예절과 계층적 상징이 담긴 중요한 의복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대부분 잊혔으며, 전통혼례나 전시관에서만 볼 수 있는 문화유산이 되었다.

 

한국의 조선 후기 사대부 여성 ‘장옷’

장옷은 누구의 옷이었을까?

장옷은 조선 후기 사대부 여성들이 외출할 때 얼굴과 머리를 가리기 위해 착용했던 전통 복식이다. 장옷의 이름은 ‘긴 옷’이라는 뜻에서 유래했으며, 말 그대로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외투 형태를 지녔다. 유교 질서가 엄격했던 조선 사회에서 여성의 외출은 드물었고, 외출 시에는 반드시 품위를 지키는 복식이 요구되었다. 특히 사대부 여성들은 외부의 시선을 피하고 가문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장옷으로 자신의 신분과 품격을 표현했다. 장옷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여성의 위치와 역할, 그리고 사회적 억압을 상징하는 문화적 상징이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는 남성 중심 사회가 더욱 강화되며 여성 복식에도 더욱 엄격한 제약이 생겼고, 장옷은 이러한 사회 분위기의 산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장옷이 담고 있는 문화적 의미는?

장옷은 조선 후기 여성의 삶과 유교 문화의 통제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복식이다. 당시 여성은 음(陰)의 존재로 간주되어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아야 했고, 장옷은 이러한 관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도구였다. 특히 장옷은 계층과 예절의 상징으로서 기능했다. 사대부 여성에게 장옷은 외출 시 반드시 착용해야 할 의무였고, 장옷의 재질이나 색상은 신분과 나이에 따라 규정되었다. 장옷을 통해 여성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 동시에, 정숙함과 절제를 실천하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했다. 또한 장옷은 여성이 속한 가문의 품위를 대외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했으며, 이는 복식이 곧 인격의 연장이라는 전통적 사고방식과도 연결된다. 장옷을 입는 행위 자체가 이미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하나의 언어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장옷은 단순히 유행하는 외출복이 아니라, 조선 사회의 여성관, 예절, 권력구조를 응축한 문화적 상징물이었다.

장옷은 왜 사라졌을까?

장옷은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급격히 사라지게 된다. 20세기 초부터 사회적 변화와 근대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여성의 역할과 복식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장옷은 외출 시 여성의 얼굴을 가리기 위한 목적이 강했지만, 점차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고 복장에 대한 규제가 약화되면서 그 기능이 약해졌다. 더불어 일제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억압하고, 서양식 의복을 장려하면서 장옷은 비실용적인 구시대 유물로 여겨지게 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장옷은 거의 복원되지 않았으며, 오늘날에는 전통혼례 재현이나 박물관 전시에서만 간혹 볼 수 있는 희귀한 복식으로 남아 있다. 현재는 복식사 연구자들에 의해 재조명되고 있으나, 실제 생활에서 장옷을 입는 사람은 없다. 장옷은 그렇게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잊힌 복식이 되었고, 그 안에 담긴 여성의 삶과 가치 역시 함께 잊혀지고 있다.

장옷 복식의 특징은 무엇일까?

장옷의 복식은 전체적으로 발목까지 내려오는 길이, 넉넉한 소매, 그리고 머리까지 덮을 수 있는 후드 형태의 모를 갖춘 것이 특징이다. 장옷은 일반적으로 홑겹이나 두 겹의 비단으로 만들어졌고, 계절에 따라 소재가 달라졌다. 여름에는 얇은 명주나 모시를 사용했고, 겨울에는 안에 솜을 덧댄 누비 형태로 제작되었다. 장옷의 색상은 대부분 검정이나 남색처럼 어두운 계열이 많았지만, 계급과 혼인 여부에 따라 자주색, 회색, 초록색 등도 허용되었다. 장옷의 앞깃에는 끈이 달려 있었으며, 착용자가 끈을 묶어 얼굴을 가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특히 후드 형태의 머릿덮개는 치마저고리나 쓰개치마와는 구별되는 장옷만의 독특한 구성 요소였다. 이러한 구조는 여성을 은폐하는 동시에, 당시의 미적 기준과 격식을 충족하는 방식이었다. 이처럼 장옷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섬세하고 정교한 사회적 기호체계의 일부였다.

장옷과 망건장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장옷과 망건장삼은 모두 여성의 외출 시 착용되던 복식으로,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얼굴을 가리고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강했다. 조선 후기의 장옷이 유교적 정숙함과 계층의 상징으로 기능했다면, 명나라 여성의 망건장삼 또한 유사한 맥락에서 사용되었다. 망건장삼은 속곳이나 속치마 위에 걸치는 긴 겉옷으로, 얇은 천으로 머리를 덮는 ‘망건(網巾)’과 함께 착용되어 머리와 얼굴을 절제되게 가리는 역할을 했다. 두 복식 모두 길고 넉넉한 실루엣, 겹겹의 레이어드 구조, 절제된 색채를 통해 사회 질서와 예의범절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조선의 장옷이 좀 더 후드형태에 가까운 머리 덮개를 갖춘 반면, 망건장삼은 얇은 천을 따로 두건처럼 묶는 방식으로 약간의 차이를 보였다. 이처럼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에서 여성 복식은 단지 ‘입는 것’을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표현하는 장치로 자리매김했다.

장옷과 망건장삼, 유교적 단속이 만든 두 복식의 교차점

장옷과 망건장삼은 모두 유교 문화권에서 여성의 외출 시 정숙함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고안된 복식이라는 점에서 깊은 유사성을 지닌다. 조선 후기 사대부 여성의 장옷은 머리와 얼굴을 가릴 수 있도록 후드 형태가 포함된 긴 외투로,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고 여성의 덕성과 예절을 상징했다. 이에 비견되는 명나라 여성의 망건장삼은 망건(網巾)이라는 얇은 망사 천으로 머리를 덮고, 그 위에 장삼(長衫)이라는 긴 겉옷을 착용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두 복식 모두 실용적인 방한복이라기보다 예의와 격식, 계층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였으며,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존재를 희미하게 만들도록 디자인되었다. 특히 장옷이 혼례, 장례 등 의례적 외출에 주로 사용된 것처럼, 망건장삼 역시 제례나 가족 행사 등에서 자주 사용되며 여성의 신중한 태도를 강조했다. 결국 두 복식은 다른 민족과 시대의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유교적 통제라는 동일한 틀 안에서 ‘여성을 가리는 옷’이라는 목적 아래 비슷한 기능을 수행했던 역사적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장옷과 망건장삼 비교 요약
항목 조선의 장옷 명나라의 망건장삼
착용 계층 사대부 여성 중산층~상류층 여성
복식 구성 후드가 달린 긴 외투 망건(얇은 천) + 장삼(긴 옷)
주요 목적 외부 시선 차단, 정숙함 강조 머리 가림, 예의와 격식 표현
사용 상황 외출, 혼례, 제례 등 제례, 가족 행사, 외출
문화적 상징 유교적 여성 규범과 계층 질서 반영 유교 예절 속 여성 통제의 시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