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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민족의 전통의상

볼리비아 아이마라족의 전통치마 '폴레라'

아이마라족 여성의 자긍심, 전통치마 '폴레라'의 역사와 의미

볼리비아 아이마라족의 전통치마 '폴레라'는 단순한 의복이 아니다. 그것은 식민지 시대의 억압과 차별, 저항과 정체성의 투쟁을 모두 품고 있는 하나의 문화적 선언이며, 오늘날에는 여성 스스로의 존엄과 자긍심을 드러내는 '걷는 역사서'이기도 하다. 폴레라(Pollera)는 본래 스페인 식민지 통치 시기, 원주민 여성들에게 스페인 여성의 복장을 모방하라고 강요되며 등장한 치마다. 16세기부터 시작된 이복식은 억지로 강요된 것이었지만, 수 세기 동안 아이마라 여성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변화시켜 지금의 독창적인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 치마는 그 폭과 겹의 수, 주름의 크기, 원단의 무게감에 따라 착용자의 계급, 경제력 지역적 특성, 심지어는 성격까지 반영하는 매우 복합적인 문화상징이다.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볼리비아 아이마라족의 전통치마 '폴레라'는 보통 풍성한 주름과 넓은 폭의 겹겹이 겹쳐진 스커트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위에는 정교하게 자수된 블라우스와 무거운 숄이 매치된다. 폴레라는 단지 하나의 치마가 아닌, 대개 3겹에서 많게는 10겹까지 겹쳐 입는 구조로 되어 있어, 착용자의 하체를 웅장하게 부풀려 보여준다. 이러한 실루엣은 단지 미적 요소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과거 아이마라 여성들이 노동을 하면서도 여성스러움을 지키기 위한 전략이자, 신체를 방어하는 일종의 갑옷 역할을 해왔다. 특히 아이마라족 여성들은 이 폴레라에 다양한 천을 사용하여 사계절의 날씨를 견디도록 설계했으며, 얇은 속치마부터 무거운 벨벳 소재까지 세심하게 층을 구성해 기후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해 왔다.

 

이 전통치마는 특히 축제나 결혼식, 지역행사 등에서 더욱 화려하게 변모하며, 수많은 자수 장식과 금박 실, 레이스, 리본, 심지어는 손으로 직접 장식한 보석이 치마에 수놓아진다. 일부 여성은 이를 위해 수개월에서 수년간 한 벌의 폴레라를 준비하기도 하며, 이는 단순히 패션이 아닌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드러내는 문화적 퍼포먼스다. 이처럼 볼리비아 아이마라족의 전통치마 '폴레라'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복식 유산인 동시에, 여성이 주체적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공동체 내 위상을 드러내는 상징물로 기능하고 있다. 과거 식민 권력에 의해 강요되었던 이 치마가 오히려 오늘날에는 전통과 저항, 자존과 미학의 결합체로 승화되었다는 사실은 문화가 억압 속에서도 어떻게 재창조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폴레라는 볼리비아 내에서만 통용되는 의상이 아니다.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의 일부 지역에 사는 안데스 원주민 여성들 사이에서도 착용되며, '치올리타'(Cholita) 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치올리타들은 최근 들어 사회적 발언권을 높이며, 정치, 미디어, 스포츠 영역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드르이 전통 의상은 '구식'이라는 오명을 벗고, 이제는 문화적 힘과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대우받고 있다. 특히 라파스 (La Paz) 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치올리타 전통 의상을 입고 런웨이에 오르거나 TV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여성들도 등장하고 있으며, 이는 폴레라가 단지 복식의 경계를 넘어 자긍심의 정치적 표현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시간과 기술이 빚어낸 예술 - 폴레라의 제작과 전통의 계승

볼리비아 아이마라족의 전통치마 '폴레라'는 단순한 의복의 범주를 넘어서, 수세대에 걸쳐 전승되어 온 장인의 예술이자 정교한 수공예 기술의 총합이다. 폴레라를 제작하는 데는 매우 높은 수준의 기술과 감각, 그리고 시간을 들인 작업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한 벌의 폴레라는 최소 3겹 이상의 속치마와 겉치마로 구성되며, 각각의 치마마다 색상, 소재, 장식이 다르다. 이 복합적인 층의 구성은 단지 외형적인 아름다움 뿐 아니라, 착용자의 성격 계층, 나이, 행사 목적 등을 세밀하게 반영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기도 하다. 치마의 폭은 여성의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위상을 상징하며, 많은 겹의 치마를 소유하고 입을 수 있는 여성일수록 지역 공동체 내에서 영향력이 큰 존재로 인식된다.

폴레라 제작의 시작은 천을 고르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벨벳, 실크, 새틴, 면, 레이스 등 다양한 천이 사용되며, 어떤 행사를 위해 입을 것인지에 따라 천의 종류가 결정된다. 결혼식이나 종교 의례에서는 고급 벨벳과 정교한 자수가 들어간 천이 주로 쓰이고, 평상복이나 시장용 폴레라는 다소 가볍고 활동하기 쉬운 면소재가 선택된다. 선택된 천은 숙련된 재봉사의 손길을 거쳐 정확한 폭과 길이로 재단되며, 여기에 프릴과 주름을 형성하는 작업이 더해진다. 이 주름 작업은 단순히 미적 효과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각 주름에 상징적인 의미가 담긴다. 예컨대 일부 지역에서는 주름의 수가 가문의 구성원 수나 특정 사건의 상징으로 간주되기도 하며, 일부는 여성의 수줍음이나 겸손함을 표현하는 장치로 해석되기도 한다. 

주름을  완성한 뒤에는 장식 작업이 들어간다.. 이는 폴레라의 '얼굴'을 만드는 작업으로, 금박 실, 자개, 수입산 리본, 비즈, 스팽글 등을 이용해 정교한 문양을 수놓는다. 이러한 문양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어떤 문양은 특정 부족이나 마을을 나타내기도 한다. 자수기법은 대부분 여성 장인들의 손에서 익히는 것으로,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 할머니로부터 전수받는다.. 이 과정은 단순히 기술을 배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딸이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자수를 배우는 시간은 단순한 교육이 아니라, 세대를 잇는 정서적 유대의 시간이며,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내면화하는 중요한 의례적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이처럼 축적된 기술은 오늘날까지도 대부분 구술과 실습 중심으로 전수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이러한 기술 전승을 보호하기 위해 자수학교나 워크숍, 마을 단위의 협동조합도 운영되고 있다. 

또한 폴레라의 완성에는 머리장식, 귀걸이, 신발 등과의 조화도 필수적이다. 볼리비아 아이마라족 여성들은 보통 플랫한 챙이 달린 전통적인 '폭시햇' 모자와 자수를 맞춘 숄, 진주 장식의 구두 등을 함께 착용하며, 이를 통해 전체적인 코디네이션을 완성한다. 이는 단순한 스타일링을 넘어, 전통 복식 전반에 걸친 '삶의 태도'를 드려내는 행위로 간주된다. 특히 행사나 퍼레이드에서는 이 모든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움직이는 예술 작품'이 되며,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감마저 느끼게 만든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폴레라의 디자인과 색감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인 무거운 색감과 두꺼운 천에서 벗어나, 더 가볍고 화사한 소재를 활용하거나, 디지털 프린팅을 접목한 현대적인 패턴이 시도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폴레라의 생명력이 단순한 보존에 그치지 않고, 시대에 맞게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폴레라는 전통의 보존과 변형, 계승과 창조가 동시에 진행되는 문화적 유기체이자, 아이마라 여성의 삶과 함께 숨 쉬는 복식이다.

 

볼리비아 아이마라족의 전통치마 '폴레라'

정체성의 정치, 문화의 무대 - 폴레라의 현재와 세계적 가치

볼리비아 아이마라족의 전통치마 '폴레라'는 이제 단순한 의복이나 전통 복식의 범주를 넘어, 원주민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재정의하고 정체성을 선언하는 강력한 정치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에는 도시 상류층의 시선 속에서 '시골 촌스러운 옷'으로 여겨졌던 이 치마가, 이제는 공공 연설, 시위, 미인대회, 런웨이, 영화 등 다양한 무대에서 자부심을 드러내는 중심 요소가 되고 있다. 특히 '치올리타'로 불리는 아이마라 여성들이 정치와 공공 영역에 진출하며, 전통 복장을 고수한 채 공식 석상에 등장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충격을 동시에 안겨줬다. 복장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내는 행위는 단순한 의상 선택이 아니라, 식민 잔재와 인정차별, 계급차별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하나의 '문화적 저항'인 셈이다.

이러한 흐름은 21세기 초반을 기점으로 크게 가시화되었다. 특히 여성 인권운동과 원주민 권익 확대 흐름 속에서 폴레라는 단지 고유한 옷이 아니라, '정체성의 정치'를 실천하는 도구가 되었다. 예컨대 2015년 볼리비아 국회의원이 된 일부 치올리타들은 폴레라를 입고 본회의에 출석하면서,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이며, 이 문화의 목소리이다" 라는 메세지를 강력하게 던졌다. 과거엔 정장 차림이 공식적인 복장으로 강요되었지만, 이들은 정장을 거부하고, 오히려 전통 복고식이야말로 진정한 '공식성'이라며 사회의 관점을 뒤흔들었다. 이는 단순한 복식의 문제를 넘어서, 문화적 다양성과 정체성의 정치학에 대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아이마라 여성들이 활보하는 길거래 패션은 '볼리비아적 미'의 새로운 기준이 되었고, 이는 국가 브랜드 이미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또한 폴레라는 글로벌 문화 콘텐츠로서도 주목받고 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세계 민속 패션전, 유네스코 전통문화 전시 등에서 폴레라는 볼리비아 고유의 미적 감각과 철학, 그리고 여성 중심의 복식 미학을 담은 상징물로 소개된다. 많은 패션 디자이너들이 폴레라의 실루엣과 자수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하고 있으며, 특히 윤리적 패션 (Ethical Fashion) 이나 슬로우 패션 (Slow Fashion) 흐름과의 연결성 덕분에 지속가능한 패션의 아이콘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이마라 여성 장인들과의 공정무역 및 협업 모델도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으며, 이는 경제적 자립과 문화 보존을 동시에 실현하는 긍정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는 폴레라 스타일을 차용한 '트랜스컬처럴 패션'  제품은 젊은 소비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이 모든 움직임의 중심에 '여성'이 있다는 것이다. 볼리비아 아이마라족의 전통치마 '폴레라'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통해 말하고, 행동하고, 문화를 창조하는 방식의 가장 강렬한 표현이다. 아이마라 여성들은 폴레라를 입고 자신의 역사와 언어, 감정을 세상에 드러낸다. .그리고 것은 곧 자신이 살아왔던 공동체의 기억과,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실, 앞으로 만들어갈 미래를 모두 끌어안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 치마를 만드는데 걸리는 수개월의 시간, 그 안에 들어가는 노동과 정성, 그리고 겹겹이 쌓인 이야기들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도구가 아니라, 문화가 살이 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움직이는 증거'이다. 

결론적으로 볼리비아 아이마라족의 전통치마 '폴레라'는 복식에 담긴 역사적 기억과 현재의 문화적 실천이 만나는 지점이다. 이는 억압의 상징이 자긍심으로 바뀐 놀라운 여정이며,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역사를 다시 쓰는 문화 혁명의 실현이다. 폴레라는 이제 단지 전통을 입는 행위가 아니라, 세계를 향한 선언이고, 문화의 미래를 설계하는 도구이며, 인간이 어떻게 옷을 통해 정체성을 지키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르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그리고 이 거대한 치마 끝자락에서 우리는 한 미족의 숨결과 기억, 그리고 살아 숨쉬는 문화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두 개의 '폴레라' 전통의 이름 아래 피어난 문화의 다양성

볼리비아와 파나마, 서로 다른 대륙의 고도와 해양이 아누는 땅에서 '폴레라'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두 전통 의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무척 흥미롭다. 이름은 같지만 이들이 담고 있는 역사, 문화, 정체성은 사뭇 다르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파나마의 '폴레라'에 대해 알아보고 두 '폴레라'를 비교해 보고자 한다